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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ks andailincic 


new season’s thoughts
2014 S/S 시즌을 맞이해 화려한 컬러 입기에 도전한 [ELLE] 패션 에디터. 네이비와 블랙이 만연한 세상에서 살던 그녀는 과연 컬러풀한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낮에 거리를 걷다 문득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건물 유리창에 비춰진 나는 슬로모션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마치 온몸에 불이라도 붙은 것 같다. 옆을 지나가던 행인들이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며 “저 여자 누구야?”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록산다 일린칙의 샛노랑 스커트가 다리를 감싸고 있고 조셉의 점퍼는 너무나도 선명한 초록색이다. 만약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면 고개를 쳐들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휙 날리는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을 테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머리를 감지 않았다.

자, 한 번에 하나씩 설명하자면 실제로는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나는 뭘 바랐던 걸까? 어디에나 매치할 수 있는 안전한 검정색 팬츠, 짙은 네이비 코트와 같은 사랑스럽고도 특색 없는 옷들은 이번 칼럼을 위해 포기해야 했다(나는 미우치아 프라다를 원망해 보기도 하지만, 이번 시즌 컬러 트렌드에서 그녀의 기여도는 단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하느님 제발 도와주세요! 지난 일주일 동안 다크한 컬러의 니트 톱이나 검정색 울 소재 바지는 내 몸을 스치지도 못했어요.” 나는 지금 장엄한 테크니컬러(Technicolor)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2014 S/S 시즌에서 이기기 위해.


이미지 목록

brave with color



비록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을지언정 이번 도전은 내가 즐길 수 있는 영역에 포함된다. 나는 늘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을 사랑해 왔다. 예를 들면 대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한 살 무렵, 일본으로 이사한 것 같은. 언어조차 생소한 곳에서 혼자서 생활한다는 것은 벅차기도 하지만 무서운 일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그만큼 독립적인 아이였던 나는 그곳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그토록 원했던, 여행을 갈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컬러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이는 멀티컬러 스커트에 터키색 톱을 입고 있는 그때의 사진이 말해준다. 그런 옷차림을 할 때면 일본 학생들은 나에게 굉장히 ‘가와이이(귀엽다, 예쁘다는 뜻)’하다고 말해주곤 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무엇이 변했던 걸까? 내 또래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꽤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직업도 갖고 있었고, 반대로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오! 죄송해요, 저희가 실수를 저질렀네요”라고 말할 것 같은 두려움도 동시에 안고 살던 그 시절. 그래서 늘 고개를 숙이고 길을 걷던 그때. 나는 욕심부리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투덜거리지 않고, 더 가지려 하지 않고,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며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았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고마운 것들이지만 결국 그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일본은 남편을 만나게 해주었지만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야 했다. 만사 그렇듯 한쪽이 시작하려고 하면 다른 한쪽은 무너지게 되는 것처럼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직업과 결혼. 결혼을 택했지만 곧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컬러풀한 백은 누구나 손 쉽게 도전 가능하다.

걸리시한 컬러에는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조화를 이룰 것.

노란색 레더 스커트로 완성한 과감한 스프링 룩. 


런던으로 돌아온 몇 주 동안은 정말 굴욕적이었다. 내가 쌓아올린 다리들을 스스로 태우는 느낌이었다. 좋은 기회를 날린 것 같았다. 오래된 연락처들을 펼쳐보는 것도 창피했고 내 경력에 맞는 직업을 구하려고 사람들에게 연락하기도 싫었다. 결국 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투정부리지 않고 그 전의 공포 따위는 지워버리고 더 잘하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그 과정이 말처럼 쉽진 않았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마주치기 일쑤고 그때마다 함께 일했던 것을 언급하지도 못할 만큼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 실수를 저질렀어. 근데 어쩔 거야?’라고 용감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좌절하며 집에 오면 울곤 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게 음소거를 입혔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나쁘게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자신을 치료할 수 있었던 가장 값진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쯤 지금의 약혼자를 만나기 시작했고 프리랜스 기자로 일도 시작했다. 생활의 균형을 찾기 시작하면서 행복할 때도 있었고 자신감도 얻었지만 여전히 내 옷들은 어두운 과거에서 회복되지 못한 듯싶었다.

지난 5년의 시간을 빨리 감기로 돌이켜보면 특색 없는 진한 네이비와 블랙 컬러 옷을 입고 사기꾼 증후군을 앓으며 다른 이들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이 나의 또 다른 자아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엘르]의 일원이 됐다. 내 사수이자 편집장인 로레인(Lorraine)에게는 그런 비굴한 자아 따윈 없어 보인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파티 때 모든 팀원들에게 별명을 새긴 다이어리를 선물하기도 하고, 일이 끝날 땐 항상 “원하는 대로 행동해!”라고 함성을 지르며 기운을 북돋워주곤 했다.

식상한 블랙 바이커 재킷 대신 초록색 레더 재킷으로 변화를 줄 것.

opening ceremony

mm6 


그리고 마침내 나에게 일주일 동안 색깔 있는 옷을 입으라는 도전 과제를 던져주었다. 과제의 숨은 의미는 뻔했다. 더 용감해질 것. 그러나 지금의 나는 과거에 비해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인지 예전처럼 도전을 즐길 수만은 없었다. 갈수록 커지는 도전에 대한 책임감 앞에 다시는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또 겪을 수 있을까?

첫날은 ‘Blue Monday’로, 서서히 도전의 시작을 알렸다. 로열 블루 컬러의 아크네 가죽 팬츠에 흰색 조셉 셔츠와 파우더 블루 컬러의 재킷, 여기에 핑크색 립스틱으로 컬러의 균형을 맞췄다. 이왕 도전할 거면 확실하게 컬러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싶었다. 블루 컬러로 도배한 나는 아파트를 나오기 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처럼 세상에 노출된 듯한 민망함에 자신을 꼭 한 번 끌어안았다. 화려하게 치장한 알몸 같은 느낌…. 아무 반응도 없다.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는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몇몇이 립스틱을 바르고 왔다는 사실을 언급했고 재킷이 예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컬러의 ‘C’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목요일에는 칼 라거펠트의 바나나 같은 노란색 가죽 재킷을 입고 지하철을 탈 정도로 대담해졌다. 열차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눈길을 주는 이가 없었다. 모두들 블랙, 블루, 브라운 위에 비슷한 여러 가지 컬러를 조합해 입고 있었으며 한 여자만이 코발트 컬러의 코트와 함께 매칭한 비니를 쓰고 있었다. 그녀조차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협력자라도 되는 양 구석 자리에서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세상은 내가 입은 것에 대해 무심한 것 같다. 내가 고르는 옷들이 성격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맞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모르고, 관심도 없지 않은가! 이상하게도 이 사실은 묘한 자유로움을 주기도 한다. 나에게 컬러는 일본어와 같다.

roks anda ilincic

enjoycolor match강렬한 초록색 스커트에 클러치백으로 포인트를 줬다. 

 

내가 깨우쳐야 할 난해안 언어 같은 것. 그리고 그 언어를 다 깨우쳤을 때 도달한 결과는 어떤 색깔을 입어도 나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자 진정한 변화가 느껴졌다. 커트 가이거의 오렌지 힐은 항상 신는 신발이 되었고 화려한 프린트의 몽키 재킷을 사려고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 아니라 로열 블루 컬러의 아크네 팬츠를 ‘우연히’ 집에 두고 나오는 일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컬러를 고르기 앞서 나에게 맞는 편안한 실루엣과 디자인의 옷을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하루는 친구가 주최하는 패션 파티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날 친구는 검정 드레스에 운동화를 신은 채 아름답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나는 빔바앤로라(Bimba y Lola)의 주황색 니트와 화려한 패턴의 펜슬 스커트를 입고 갔다. 보기에는 내가 입은 룩도 아름다웠지만 실상은 스커트가 지나치게 타이트했고 양쪽으로 트인 슬릿은 허벅지 위로 한참 올라가 있었다. 그날 파티 내내 스커트 때문에 정신이 없었고 결국 너무 불편해서 대담하게 시도했던 충격적인 주황색 니트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어느 컬러가 어떤 컬러와 어울릴지를 판단하면서 옷을 고르는 일이 과연 즐겁기만 할까? 아마도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문득 밝은 색조의 옷감일수록 질감이 더 도드라진다고 했던 대학 동료의 말이 생각난다. 반면 검정은 여러 종류의 약점을 숨길 수 있다고. 검정 그 자체도. 하지만 나처럼 혹은 블랙 컬러처럼 어디에든 숨어 지내길 좋아하는 성격이고,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를 내는 것을 싫어한다면 억지로 컬러의 홍수 속에 섞이기를 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컬러를 입는다는 것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스스로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한 발짝 빠져 나오는 것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많은 사람 속에서도 우뚝 솟아 보이게 될 것이다.

잔잔한 패턴과 하늘색의 조화.

때론 과감한 컬러 매치가 시크한 룩을 완성한다.

tommy hilfiger 



5 color tips 

컬러풀한 시작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5가지 실전 팁.

dior기존의 스타일 법칙은 머릿속에서 지울 것. 의외의 컬러 조합이 스타일리시할 때가 있다.

celine시작은 천천히. 부분별로 컬러 블로킹이 된 아이템을 활용하자.

이미지 목록

ermanno scervino한 톤으로 아래위를 매치 할 것. 컬러가 달라도 톤이 같으면 광대처럼 보이진 않는다.

burberry prorsum크게 생각하고, 작게 시작할 것. 액세서리를 이용해 하나의 컬러 포인트를 줄 것.

chanel패턴을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을 잡아먹진 않을 테니. 



words - LEISA BARNETT
editor - 황기애
아트 디자이너 - 이유미
사진제공 - IMAXtree.com, VICTORIA ADAMSON
출처 - ELLE (http://www.el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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